의학 3대고통이라는 것이 있다.
요로결석, 출산, 급성 치수염.
예전의 나였다면 이 중 요로결석과 출산정도만 적당히 눈에 들어왔을텐데…
이걸 기억하게 된 시점에서 망한거다. 출산이 예정되어있거나 요로결석에 걸린 사람이라면 '의학 3대고통…' 이런식으로 설명할 리가 없다. 그냥 조오오오오온나 아프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식이기 때문이다.
즉 "의학 3대고통"따위를 기억하는 사람은 급성 치수염에 뒤져본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나다.
(급성 치수염의 증상과 치료과정이 급하다면 화요일 시점부터 읽으시길)
1일차: 토요일
일기에서 발췌
간헐적인 치통이 있었다.
하지만 헬스도 다녀오고 식사도 문제없었다.
피곤하면 종종 잇몸이 아팠고, 기말고사의 악몽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 여파가 남았다고 생각했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통증이 계속되면 바로 치과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잠에 들었음.
누우니까 치통이 조금 더 심해졌다.
2일차: 일요일
토요일과 같이 평범하게 식사하고, 평범하게 운동했다.
누웠을 때 치통이 심해져서 인터넷을 뒤져보니.."누웠을 때 얼굴 부위 혈관에 압력이 높아져 치수 내 신경에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별일은 아니군. 하고 평소 먹던 잘듣는 진통제를 먹고 취침준비.
이상하게도 치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때 ■됐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종종 진통제 한알로는 가라앉지 않는 두통이 있었기에 피곤하기도 하고 억지로 잠을 청함.
그리고 물을 마시거나 양치를 하거나 가글을 하면 통증이 감소한다는 것도, 이 날 약간 눈치를 챘다.
거슬리는 통증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다음날 치과에 가기로 결정.
3일차: 월요일
예약을 하지 못한 상태라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서 검진을 받음.
정확히 어느 이가 불편한지 모르는 상태라, 적당히 '오른쪽이 불편합니다'하고 설명한 뒤 검진결과는 이상없음.
시린 이도, 충치도, 잇몸도 정상. 내가 보기에도 정상. 그럼 그 통증은 환상인건가...
치과에서 한껏 고생해본 뒤로 치아를 열심히 관리해와서 괜찮을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이번에도 이런 차원에서 미리 간것인데^^ㅋㅎㅋㅋ
결과도 이상 없다하고, 아직 크게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찜찜함을 남긴 채 약속에 감.
역시 식사도 문제없고, 운동도 잘 다녀옴.
밤이 되자 역시 통증이 밀려옴. 하지만 양치질을 여러번하고, 물을 마셔주니 좀 가라앉았음.
혹시나 싶어 손으로 치아나 잇몸을 만져봤지만 아픈 곳은 없었음. 참 이상한 일이네..하며 인터넷을 서칭.
'충치가 없는데 치통' '치통 원인'등을 검색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음.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충치나 외관상문제(크랙 등)가 없으면 치통이 생기는 일은 드문 것 같고,
나는 인터넷에서 증상을 서치할 때 드문 경우는 제외하고 생각하기때문에
아마 발견하지 못한(예를 들면 떼운 곳 밑으로 충치가 생겼다거나)충치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함.
하지만 그냥 지내다보니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어쩔까... 고민하다 지쳐 잠들었음.
https://www.youtube.com/watch?v=Vn_ZkI7-IZ4
4일차: 화요일
이 날도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일어나 운동을 다녀온 후(유산소 운동을했으며, 좀 불편할 뿐 이렇다할 통증은 없었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active rest겸 약속장소까지 걸어감.(편도 40분거리)
저번에 먹은 약은 두통에 효과적이라, 치통에는 별로 효과가 없었던걸까...하는 합리화를 하며 치통에 좋다는 진통제도 구입.
= 즉, 통증이 심해지기 전까지 전혀 생활에 문제가 없었으며, 딴 생각에 빠져있으면 통증이 없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성인가 싶은 기분까지 느낌
오후 5시~6시경 집에 돌아와 적당히 식사를 하고, 꽤 많이 걸었기 때문에 피곤해서 조금 졸았다.
7시반쯤 일어나서 부모님이 과일을 먹으라고 하셨으나
기분나쁜 치통에 식욕이 영 없어 물만 계속 들이켰다.
양치와 가글도 계속 해주었으나, 통증이 올라오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물을 마시는게 효과적이다'라는 생각에 미쳤다.
'아무래도 다른 치과에 한번 더 가봐야겠어...'
처음 간 치과는 문제가 없다고 했으므로, 다른 치과에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에 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해 다시 원래 치과로 감)
통증이 너무 기분나쁘고 힘들어서, 약 먹고 일찍 자버리자! 라고 이불을 깔았으나
먹은 약이 전.혀.저어어어어어언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번째로 깨달은 것은, 이 통증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나는 이 통증을 견디며 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이때부터 심각하게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함)
이 때부터 마구마구 머리를 굴리기 시작함. 원인을 찾아야 고통을 줄일 수 있으니까..
양치나 가글은 더 이상 효과가 없었고, 물을 입에 머금고 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물이 미지근해지면 다시 통증이 생겼고, 물이 차가울수록 효과가 좋았다.
충치에 빠싹한 편은 아니라, 차가운 물에 통증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으로는 치아에는 체온과 비슷한 물이 가장 자극이 적으며, 찬물은 자극적이라 더 고통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미쳤고
"찬물에 치통 완화"등으로 검색해 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가장 아래부분,
찬물에 통증이 심해지면 → 치신경이 아직 살아있다
뜨거운 물에 통증이 심해지고 찬물에 통증이 완화된다 → 치신경이 거의 죽어가고 있다
내가 본 자료는 이것이 아니나, 정리가 잘 되어있어서 연치과의 글을 첨주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이것과 같고, '찬물에 통증이 완화된다'는 증상은 치수염의 가능성이 높다는 검색 결과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내 검진 결과를 미리 알려주자면, 치수염을 진단받고 치료 과정에서 내 치신경이 거의 괴사상태였는데, 이 자료와 내용이 일치한다.
'치수염'을 검색하며 그 증상에 대한 양상이나 네티즌의 경험담을 종합해봤을 때, 이 정도로 일치하면 아무리 'never google sympthoms'이지만 치수염을 의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두에 말한 '의학 3대고통'따위를 알게된다.ㅋㅋㅋ
하지만 뜨거운 물에 고통이 심해지는지는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갓 끓인 물을 적당히 식힌 후 따뜻한 보리차를 마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 아프지 않으면 치수염이 아닐테니까.
진짜 지옥이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는줄알았다.
우리 집은 물을 끓여마시는데, 보리차를 끓인 이유는 남은 찬 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즉 찬물이 없으므로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연신 입을 헹궜고
오늘 나는 잘 수 없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 고통을 참고 잠을 자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약이 들지 않는 것도 확인했다.
이제 어떻게 남은 시간을 버텨야 하는거지...눈 앞이 캄캄했다.
밖에 나가서 날이 밝을 때까지 마실 물을 사오기로 했고, 그 동안 임시방편으로 얼음을 입에 넣기로 했다.
그것은 정말 잘 한 생각이었다. 얼음을 입에 물자 아까 그 고통이 거짓말인 것처럼 정말 편했다.
그래봤자 4~5분가량이다.
11시 50분에 밖에 나가서 물을 샀다. ㅋㅋㅋ
꼴랑 350ml짜리 물로 뭘 어쩌겠다는 생각을 한것같은데 어림도 없는 짓이다.ㅋㅋㅋㅋ
물은 금세 다 마셨고, 아까 얼음을 물었을 때 통증이 없던 것이 기억나 물 대신 얼음을 이용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게 걱정돼서, 일찍 잔다고 하고 방에서 그렇게 버텼다.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안심되는 말을 해줄 정도의 정신이 없었다. 채칼에 손을 베어서 출혈이 심했을 때도 이렇게 상대를 생각할 겨를이 없지는 않았는데....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한 3~4L정도를 마신 뒤부터는 속이 나빴다.
그래서 물을 머금고 있다가 뱉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이 방법을 추천하겠다.
또 나는 잠을 자지않고 참다가 치과에 가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지만, 급하다면 치과가 있는 응급실을 이용하기를 권장한다. 치료만 시작하면 고통에서는 금방 해방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치통은 밤에 극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치과에 당장 갈 수 없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도..)
얼음이 떨어져가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음이 다 녹아서 통증이 있는 부위를 식혀주지 못하면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치아에서 퍼지는 고통이 한순간에 온몸으로 퍼진다. 찌릿하다 라는게 아니라, 나는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뒷통수가 딱딱해지고 숨이 잘 쉬어지질 않는다. 다시 얼음을 입에 넣고 진정이 될 때까지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불효스러운 소리인 것 같지만, 죽는게 나을 것 같다는 고통이다. 왜냐면 이 고통으로 정신을 잃거나 미쳐버릴 수는 있으나 죽지는 않을 것 같기때문이다. 이 고통때문에 죽을 것 같지 않아서 죽고싶다. 치통으로 자살했다던 옛사람들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나는 (아마) 고작 몇시간 견디면 되는 일이지만 그들은 희망도 없었을 것 아닌가.
만약 5분의 평온을 줄 얼음이 없다면, 이 치통을 감당하느니 나는 차라리 죽겠다. 죽음보다 그 상황이 더 무섭다.
새벽 3시경에 나는 다시 편의점에가서 얼음컵을 찾았다. 얼음컵을 찾기 전에 각얼음을 찾아서 그것을 샀다. 편의점에서 각얼음을 팔고 있는 것은 이 날 처음 알았다.
저 얼음은 1kg짜리 얼음으로, 집에서 얼린 얼음보다 천천히 녹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커서 입안에 넣고 있기는 좀 힘들었다. 그래서 통증을 몇번이나 겪어야했다. 통증부위를 제대로 식혀주질 못해서...
그런 경우 일단 입에 얼음을 물고 물을 같이 머금어주면 좋다.
3시에 구매한 얼음은 8시에 거덜났다.
5시간동안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못했다. 타이밍을 못맞춰서 다시 그 고통을 느껴야할까봐 계속 얼음을 쳐다보고있었다.
뭐 게임을 한다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다큐를 본다는 여유는 안생긴다.
말을 할 수 없어서 카톡으로 부탁했다.
저 즈음에는 얼음이 없으면 '즉시' 고통이 올라오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밖에 나갈수가 없었다.
급성치수염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치과로 가겠다는 계획은 철회하고 기존 치과로 갔다.
이유는 그 치과에 대한 신뢰도 있지만, 외관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의사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치수염이지만(밤새 공부하고 혼자 확진함ㅋㅋㅋㅋ), 그 원인인 충치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확인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전문가의 진단이 있기 전에 '저 ㅇㅇㅇ인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내 생각으로는 썩 좋은 풍경은 아니나, 나는 빠른 진단이 필요했고, 급성치수염이 아니라면 그 다음은 맡기자. 하지만 급성치수염이라면 제발 빨리!!!! 라는 생각으로 '저 급성치수염인것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감사하게도 찬물에 통증이 완화되고 따뜻한물에 고통이 커졌다는 증상을 듣고 치수염증상이 맞는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고, 외관상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엑스레이를 찍기로 하였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잠시 얼음을 뱉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워 작은 얼음을 물고 엑스레이는 찍는 지경이 되었다ㅋㅋㅋ
혹시 있을 상황을 대비해 텀블러에 얼음을 채워 가지고갔고, 대기할 때면 얼른 얼음을 물었다. 매우 도움이 되니 참고하세요..
고통때문에 어느 치아가 아픈지(윗니인지 아랫니인지)도 헷갈리는 상태에서, 엑스레이상으로도 정확한 원인을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의심이 되는 치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치아들을 타진했고, 타진으로 아픈 치아를 찾을 수 있었다.
원인은 충치가 맞았다. 하지만 엑스레이상으로도 충치를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예전에 충치를 치료한 치아 위에 씌운 레진'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딱 보이지 않게 충치가 발생한 탓에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아랫니에 문제는 없지만 레진이 조금 손상된 치아가 있어, 그 치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아픈 치아는 윗니에 있었다. 사실 따뜻한 물을 마실 때 위쪽에서 고통이 느껴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정말 전혀,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아랫니만 의심했다.
아픈치아를 찾아 마취를 시작하니 고통이 가셨다. 그리고 신경치료를 시작하자 안정됐다.
치수염이 어떤 질병인지 검색해보았다면 알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치아 내 치수가 염증으로인한 가스로 팽창하는데, 외피인 치아가 단단하므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스를 빼주면 더이상 심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리하면, 치수염은 찬물에 고통이 완화되고 따뜻한물에 고통이 커지며(...굳이 확인하지는 말길)
충치가 있고 그 치아가 아프다면 더 확실하겠지만
충치가 없어도 증상이 일치한다면 치수염일 확률이 높다. (숨겨진 충치, 혹은 자극으로 인해 염증이 생겨서)
간헐적으로 증상이 있을 때 반드시 치료를 받길 바라며
견딜 수 없을 통증이 오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나는 충치가 보이지 않게 가려져있었고(왜 거기서 쳐 살고 난리-_-), 치수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통증으로 미리 치과에 방문했을 때 해결하지 못했지만..
아, 운이 나빴다.
급성치수염으로 이 글에 들어오신분들께 위로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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